반응형 전체 글23 조선왕조, 패륜의 세조 그 업적 세조의 즉위를 도운 공신 집단은 곧 강력한 정치 기반을 이루었고 후대에 ‘훈구파’라 불렸다. 한명회·정인지·신숙주 등이 그 핵심이었다. 그들은 반정의 공을 바탕으로 관직과 토지, 혼인 네트워크를 독점하며 기득권을 공고히 했고, 동시에 국정 전반을 제도화하는 작업에 깊숙이 관여했다. 법전 편찬은 세조 대에 본격화되어 이후 예종·성종 대에 걸쳐 완결된 《경국대전》으로 결실을 보았고, 국가 통사 편찬의 흐름 또한 성종 대 《동국통감》으로 이어졌다. 즉, 훈구파는 권세를 누렸을 뿐 아니라 국가 운영의 ‘틀’을 만드는 작업에도 참여해 양면의 유산을 남긴 셈이다. 이 가운데 한명회는 세조의 책략가이자 정국 설계자로서 장수를 누렸고, 말년에 한강 변에 갈매기와 벗하며 조용히 살고자 세운 정자를 ‘압구정(狎鷗亭)’이라.. 2025. 8. 16. 조선왕조, 꺾여버린 어린 군주 1. 꺾여버린 어린 군주 1452년 열두 살의 단종이 즉위했을 때 조정에는 그를 보호할 대왕대비도, 국정을 임시로 맡을 왕비도 없었다. 어머니를 잃고 곧 아버지마저 떠나보낸 소년 왕 곁에는 유언으로 지명된 고명대신들만 남았다. 영의정 황보인과 좌의정 김종서는 인사 문서를 정리해 올리고, 세자가 붓끝으로 낙점하는 형식의 정사를 진행했는데 사람들은 이를 ‘황표 정사’라 불렀다. 자연스레 권력이 두 정승에게 쏠리자 세종의 둘째 아들 수양대군은 칼끝을 갈기 시작했다. 그의 눈앞에 가로막힌 거목은 4군 6진 개척을 지휘하고 《고려사》와 《고려사절요》 편찬을 주도한 원로 김종서였다.1453년 가을밤, 수양대군은 측근과 병력을 이끌고 김종서의 집 문 앞에서 말고삐를 잡았다. 인사를 나오던 김종서가 봉문을 열려는 찰나.. 2025. 8. 14. 조선왕조, 지덕체를 갖춘 문종 세종의 며느리들은 때때로 상식을 벗어난 행보로 궁궐을 술렁이게 했다. 특히 세종이 오랜 절차를 거쳐 간택한 세자빈이 연달아 폐출되는 사태는 당시 조정과 백성의 입에 오르내릴 만큼 큰 파문이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1421년 세종은 장남 이향을 왕세자로 책봉했고, 세자가 열네 살이 되던 해 첫 혼례를 올려 김씨를 세자빈으로 맞았다. 그러나 혼인은 길지 못했다. 김씨가 남편의 사랑을 얻으려 비술을 익혔다는 사실이 발각되어 혼례 후 3년 만에 폐위된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남편의 눈길을 끈 궁녀 효동과 덕금의 신발 재를 술에 타 마시면 사랑을 되돌릴 수 있다는 따위의 미신을 시녀에게서 배웠다는 진술이 문제였다. 김씨가 실제로 시행했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세종은 국모가 될 인물의 품격에 어긋난다며 단호히 결단.. 2025. 8. 13. 조선왕조, 가장 많은 업적을 남긴 세종대왕 태종의 뒤를 이은 이는 셋째 아들 충녕이었다. 어려서부터 책 읽기와 토론을 즐기던 그는 밤을 새우며 경전을 파고들었고, 태종이 “밤에는 불을 끄고 쉬라”고 타이를 만큼 학구적이었다. 반면 장자 양녕은 세자로 책봉된 뒤에도 기질이 거칠고 공부에 성실하지 못해 신하들의 신망을 잃었다. 경회루 연회에서 충녕이 유교 경전을 막힘없이 읊자 태종이 감탄했고, 곁에 있던 양녕에게 “어찌 학문이 이만 못하냐”라며 핀잔을 주었다는 일화가 남아 있다. 결국 양녕은 사사로운 행동으로 물의를 일으켜 1418년 폐세자가 되었고, 충녕 이도가 새로 세자로 책봉되었다. 같은 해 태종은 상왕을 자처하며 스스로 물러났고, 스물두 살의 충녕은 조선의 네 번째 임금 세종으로 즉위했다. 태종이 다져 놓은 권력 기반이 있었기에 세종은 초반부.. 2025. 8. 12. 조선왕조의 시작, 태조 이성계(2) 4. 끝나지 않은 왕자의 난1차 왕자의 난 이후 실질적인 권력을 쥔 이방원은 곧바로 왕좌에 오르지 않았다. 스스로 내세운 명분이 ‘적장자 계승’이었기에, 첫째 형이 이미 세상을 떠난 상황에서 차례상 둘째 형 이방과에게 왕위를 양보한 것이다. 이렇게 1398년, 이방과가 조선의 두 번째 임금 정종으로 즉위했다.정종은 고려 말부터 아버지 이성계와 함께 왜구 토벌 전선에서 활약했던 무장이었지만, 권력욕이 거의 없었고 정치적 존재감은 미미했다. 그럼에도 그는 나름의 방식으로 왕권 안정을 꾀했는데, 그중 하나가 ‘분경 금지령’이었다. 이는 관리들이 상급자나 권력자의 집을 출입하며 청탁과 뇌물을 주고받는 행위를 막는 일종의 로비 금지 법령이었다. 하지만 실제 시행은 이루어지지 않았다.정종은 피비린내가 채 가시지 않.. 2025. 8. 11. 조선왕조의 시작, 태조 이성계(1) 1392년, 한반도의 마지막 왕조인 조선이 문을 열었습니다. 이후 1897년에는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꾸었고, 1910년 일제에 국권을 빼앗기기 전까지 무려 518년 동안 이어졌습니다. 이처럼 장기간 존속한 왕조이기 때문에, 조선의 역사를 이해할 때는 주요 시기를 나누어 보는 것이 효과적입니다.일반적으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경계로 전기와 후기로 나누지만, 세기를 기준으로 조금 더 세분해 살펴볼 수도 있습니다.14~15세기: 국가 체제가 정비된 시기로, 태조 이성계부터 성종까지를 포함합니다. 이 시기에 조선의 기틀이 완성되었습니다.16세기: 연산군에서 선조에 이르는 시기로, 사림이 정국을 주도했으나 내부 분열로 인해 임진왜란이 발발하게 됩니다.17세기: 광해군에서 숙종까지.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으로 큰.. 2025. 8. 10. 이전 1 2 3 4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