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끝나지 않은 왕자의 난
1차 왕자의 난 이후 실질적인 권력을 쥔 이방원은 곧바로 왕좌에 오르지 않았다. 스스로 내세운 명분이 ‘적장자 계승’이었기에, 첫째 형이 이미 세상을 떠난 상황에서 차례상 둘째 형 이방과에게 왕위를 양보한 것이다. 이렇게 1398년, 이방과가 조선의 두 번째 임금 정종으로 즉위했다.
정종은 고려 말부터 아버지 이성계와 함께 왜구 토벌 전선에서 활약했던 무장이었지만, 권력욕이 거의 없었고 정치적 존재감은 미미했다. 그럼에도 그는 나름의 방식으로 왕권 안정을 꾀했는데, 그중 하나가 ‘분경 금지령’이었다. 이는 관리들이 상급자나 권력자의 집을 출입하며 청탁과 뇌물을 주고받는 행위를 막는 일종의 로비 금지 법령이었다. 하지만 실제 시행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정종은 피비린내가 채 가시지 않은 한양을 떠나 개경으로 도읍을 옮겼으나, 곧 2차 왕자의 난이 터졌다. 반란의 주모자는 태조의 넷째 아들 이방간이었다. 그는 정치적 야심을 품고 있었으나, 점점 세력을 키우는 이방원의 그늘에 가려 불만을 키웠다. 이때 이방간의 곁에는 박포라는 무장이 있었다. 박포는 1차 왕자의 난에서 이방원을 도왔지만, 공신 서열에서 밀리자 앙심을 품고 이방간과 손잡았다. 그러나 1400년에 벌어진 이 난 역시 이방원의 승리로 끝났다.
다만 이번에는 형제의 목숨을 거두지 않았다. 이방간은 같은 어머니를 둔 친형이었기에 죽이지 않고 유배를 보냈고, 대신 박포가 처형되었다. 난이 진압된 뒤, 정종은 이방원을 양자로 삼아 왕세자로 책봉했다. 원칙상 왕의 동생이 후계자가 될 경우 ‘왕세제’로 봉해야 하지만, 안정적 승계를 위해 파격적으로 왕세자 칭호를 부여한 것이다.
5. 문무를 겸비한 태종의 즉위
1400년, 이방원은 마침내 3대 임금 태종으로 즉위했다. 그는 조선 왕 가운데 유일하게 과거 시험에 급제한 기록을 가진 인물이었다. 16세의 나이에 고려 과거에 합격했으며, 이는 무장 가문에서 배출된 문관이라는 점에서 부친 이성계의 자랑이었다. 이방원은 학문과 무예를 모두 갖춘 인물이었고, 젊은 시절 명나라를 방문해 주원장과 훗날 영락제가 되는 주체를 직접 만나는 등 국제적 시야도 넓혔다.
그러나 조선 건국 전후의 정치적 행보로 인해 부자 사이는 소원해졌다. 태조가 함흥으로 내려가 돌아오지 않자, 태종은 여러 차례 사신을 보내 귀경을 청했다. 하지만 사람을 보냈다 하면 돌아오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퍼졌고, 여기서 ‘함흥차사’라는 말이 생겨났다고 전해진다.
즉위 2년 차에는 신덕왕후 강씨의 친척 조사의가 동북면에서 군사를 일으켜 반란을 도모했다. 표면적으로는 개인의 원한이었으나, 그 배후에 태조가 있었다는 해석도 있다. 난은 곧 진압되었고, 조사의는 처형됐다. 이 사건을 계기로 태조는 다시 한양으로 돌아왔다.
6. 강력한 왕권 확립
태종은 혼란스러운 왕위 계승 과정에서 얻은 권력을 제도적으로 굳히고자 했다. 우선 각 세력가가 보유한 사병을 모두 해산시켜 군사권을 국왕이 장악하게 했다. 사병은 언제든 반란의 도구가 될 수 있었기에, 이를 없앤 것은 중앙집권 강화의 핵심 조치였다.
또한 그는 재상 중심의 의정부서사제를 폐지하고, 국왕이 6조에 직접 명령하고 보고받는 ‘6조 직계제’를 도입했다. 이 제도 개편으로 삼정승의 권한은 크게 축소되고, 국왕이 행정 실무까지 장악하게 되었다.
언론 기능도 강화했다. 왕에게 직언하는 사간원을 독립시켜 간언 기능을 활성화했고, 관리 감찰과 탄핵을 담당하는 사헌부를 정비했다. 훗날 홍문관까지 더해져 ‘삼사’라 불린 이 기관들은 권력 균형과 부정부패 방지의 핵심이었다. 태종은 대간이 직접 왕에게 대면하여 간언하도록 하거나, 기밀 사안은 밀봉 상소로 제출하게 하는 등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
행정구역 개편도 단행했다. 1413년, 한반도를 8도로 나누고 경기도, 강원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황해도, 평안도, 함경도의 명칭을 확정했다. 이 체제는 대한제국 시기를 거쳐 해방 이후에도 변형된 형태로 유지되었으며, ‘팔도’라는 표현은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
태종의 통치는 피와 권모술수로 점철된 과정에서 시작되었지만, 그의 중앙집권 정책과 제도 개혁은 조선왕조 500년을 지탱하는 견고한 토대가 되었다.
'한국사의 흐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선왕조, 꺾여버린 어린 군주 (5) | 2025.08.14 |
---|---|
조선왕조, 지덕체를 갖춘 문종 (4) | 2025.08.13 |
조선왕조, 가장 많은 업적을 남긴 세종대왕 (11) | 2025.08.12 |
조선왕조의 시작, 태조 이성계(1) (12) | 2025.08.10 |
[한국사] 고려의 최후 (9) | 2025.08.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