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2년, 한반도의 마지막 왕조인 조선이 문을 열었습니다. 이후 1897년에는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꾸었고, 1910년 일제에 국권을 빼앗기기 전까지 무려 518년 동안 이어졌습니다. 이처럼 장기간 존속한 왕조이기 때문에, 조선의 역사를 이해할 때는 주요 시기를 나누어 보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일반적으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경계로 전기와 후기로 나누지만, 세기를 기준으로 조금 더 세분해 살펴볼 수도 있습니다.
- 14~15세기: 국가 체제가 정비된 시기로, 태조 이성계부터 성종까지를 포함합니다. 이 시기에 조선의 기틀이 완성되었습니다.
- 16세기: 연산군에서 선조에 이르는 시기로, 사림이 정국을 주도했으나 내부 분열로 인해 임진왜란이 발발하게 됩니다.
- 17세기: 광해군에서 숙종까지.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으로 큰 국난을 겪었으며, 붕당정치가 활발히 전개됩니다.
- 18세기: 영조와 정조가 탕평책으로 붕당의 균형을 맞추려 했습니다.
- 19세기: 세도정치로 국력이 쇠퇴하고 백성들의 고통이 극심해집니다.
- 19세기 말~20세기 초: 개화기와 대한제국 수립, 그리고 일제강점기로 이어집니다.
1. 조선을 연 태조 이성계
조선의 창업자인 태조 이성계는 1392년 즉위 직후에도 한동안 국호를 ‘고려’로 유지했습니다. 왕조 교체는 국가 정체성을 새로 세우는 큰 사건이었기에, 백성들의 혼란을 줄이려는 의도였습니다. 1393년에 이르러서야 ‘조선’이라는 국호가 공식화되었습니다.
태조는 당시 57세로, 평균 수명이 짧았던 시절을 감안하면 이미 고령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곁에는 뛰어난 정치가이자 개국 공신인 정도전이 있었습니다. 정도전은 수도를 한양으로 옮기고, 성문과 도시 구조를 유학의 덕목에 맞춰 설계했습니다. 사대문 이름에는 ‘인의예지’의 의미가 담겼습니다.
정도전은 **<조선경국전>**을 편찬해 국가 운영 원칙과 제도를 정리했습니다. 그는 신권(臣權) 중심의 체제를 구상하며, 능력이 부족한 군주가 나라를 해치는 것을 방지하고자 재상의 권한을 강조했습니다. 또 고려 말 타락한 불교를 비판하고, 유교 중심의 국가 이념을 확립하는 데 힘썼습니다.
2. 왕위 계승과 1차 왕자의 난
태조에게는 전처 신의왕후 한씨 소생 6명, 후처 신덕왕후 강씨 소생 2명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조선 왕실은 일부일처제를 원칙으로 하여, 정식 왕비는 한 명뿐이었고 나머지는 후궁이었습니다.
세자 자리는 신덕왕후의 둘째 아들이자 막내였던 이방석이 차지했는데, 이는 이방원(훗날 태종)의 불만을 샀습니다. 그는 조선 건국에 큰 공을 세웠음에도 세자 책봉에서 배제되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1398년, 이방원은 세력과 군사를 모아 이방석과 그의 형 이방번을 제거하고, 정도전까지 살해했습니다. 이 사건이 1차 왕자의 난입니다.
사건 이후 태조는 정치적 충격과 가족을 잃은 슬픔에 한양을 떠나 고향 함흥으로 물러났습니다.
3. 사대정책과 조선의 초기 성격
조선은 건국 초기부터 명나라를 섬기는 사대 외교를 기본 노선으로 삼았습니다. 대외적으로는 안정적인 외교 관계를 유지하고, 대내적으로는 유교적 통치 질서를 강화했습니다. 이러한 기초 위에서 조선은 이후 500여 년간 지속될 왕조의 틀을 다졌습니다.
'한국사의 흐름'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국사] 고려의 최후 (8) | 2025.08.09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