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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역사의 시작, 사방에 용맹한 기상을 떨친 국가, 고구려(3)

by 열매와 꿈나무 2025. 7. 27.

 

 6. 수나라의 침공과 을지문덕의 살수대첩

 

 시간이 흘러 7세기, 동아시아에선 전운이 감돌았습니다. 오랫동안 분열되어 있던 남북조시대가 종결된 것입니다. 혼란의 남북을 통일하고 새롭게 중원을 차지한 주인공은 수나라였어요. 주변 이민족을 제압해 나가던 수양제는 고개를 뻣뻣이 들고 있는 고구려가 눈에 거슬렸습니다. 얼른 내 앞에 찾아와 인사하고 조공을 바치라고 요구했지만, 그때마다 고구려 영양왕은 콧방귀만 뀔 뿐이었지요. 자존심이 바짝 구겨진 수양제는 건방진 고구려의 무릎을 꿇리기로 결심합니다.

 그래서 612년, 수나라가 대대적인 고구려 원정에 나섭니다. 무려 113만 3,800명이라는 어마어마한 대군이 출정했어요. 하지만 수나라 군대는 요동성에서 그만 발목을 잡히고 말았습니다. 수양제는 정말 난감했습니다. 만약 성을 파괴하지 않은 채 그대로 적진으로 진격했다간 후방 공격이 들어올 수 있고, 퇴각할 때 퇴로가 막혀 위험해질 수도 있었으니까요.

 결국 몇 달째 함락하지 못하던 요동성을 그대로 두고, 30만명의 별동대를 속히 평양성으로 투입합니다. 이때 별동대가 짊어진 무기와 식량이 너무 무거워서 몰래 식량을 버리는 병사까지 속출할 지경이었어요. 지옥의 행군이 이어지자 점차 병사들은 굶주리고 지쳐갔지요.

 이런 상황을 간파한 고구려의 을지문덕 장군은 거짓으로 항복하겠다고 선언합니다. 이에 수나라 군대는 내심 안심하며 철수하기로 해요. 어차피 수나라 군대는 더 이상 싸울 기력도 없는 상태였어요. 그동안 을지문덕이 수나라 군대를 일부러 공격했다가 후퇴하기를 반복하면서 진을 다 빼놓고 있었거든요. 그렇게 퇴각하던 수나라군은 살수에서 고구려군의 기습 공격을 받고 처참히 전멸하고 말았습니다. 을지문덕의 지략으로 대승을 거둔 이 전투가 바로 '살수대첩'입니다. 별동대 30만 명 중에 살아 돌아간 병사가 2,700명에 불과했으니, 세계 전쟁사에 길이길이 남을 규모의 유례없는 대승이었어요.

 고구려의 성 한 채도 점령하지 못한 채 처참히 패배하다니, 수양제의 자존심에 큰 상처가 났습니다. 전쟁은 마치 도박과 같아서 한 판만 더 해보면 이길 수 있으리라는 불확실한 희망을 부르곤 합니다. 그래서 수양제는 이후에도 연례행사처럼 고구려에 계속 쳐들어왔어요. 하지만 수양제의 무리한 대외 원정과 대규모 토목공사는 결국 수나라의 멸망을 불렀습니다.

 

 7. 안시성 전투로 당나라를 물리치다

 "중원을 차지한 자가 천하를 다스린다."라는 유명한 격언이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중원이란 고대 문명을 꽃피운 황하 중하류지역의 넓은 평원을 의미해요. 이러한 대륙의 중심, 중원은 중국 역사의 중심 무대였습니다. 수나라가 망한 뒤 618년, 중원의 새 주인이 다시 통일 왕조를 이룩했어요. 그가 바로 중국사의 황금기라 불리는 당나라의 초대 황제, 당고조 이연입니다. 당고조는 수양제가 고구려 원정에 집착했다가 나라를 말아먹은 사실을 잘 알았어요. 그래서 일단은 내부 안정에 집중했지요.

 그러나 그 뒤를 이은 당태종은 달랐습니다. 주변 세력을 차례로 격파해 나갔기에, 고구려 역시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 했습니다. 그동안 계속 쳐들어오는 수나라를 막아내느라 지쳐 있던 고구려는 주변 정세를 살피며 군사력을 강화하고 천리장성까지 쌓고 있었어요. 이때 천리장성의 공사 감독관이 바로 그 유명한 연개소문입니다. 연개소문과 고구려 영류왕은 뜻이 맞지 않았어요. 온건파 영류왕은 당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고 있었거든요. 그러나 강경파 연개소문은 소극적인 영류왕의 태도 때문에 고구려의 국제적 입지가 줄어드는 것이 맘에 들지 않았어요.

 어느 날 연개소문은 영류왕 세력이 자신을 제거하려 한다는 정보를 입수했고, 이에 대응해 정변을 일으 켰습니다. 왕궁에 쳐들어가 영류왕을 살해한 뒤 꼭두각시 왕으로 보장왕을 올리고, 스스로 최고 관직에 올라 정권을 장악합니다. 강경파 연개소문이 권력을 잡았으니, 당나라와 관계도 급격히 나빠졌습니다.

 수를 무너뜨리고 등장한 당의 입장에서 고구려는 어차피 평화롭게 공존할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당나라는 연개소문의 정변을 명분 삼아 645년, 고구려를 침공합니다. 직접 군대를 이끌고 출정한 당태종은 예전에 수나라가 넘지 못한 요동성을 그대로 두고 주변 다른 성부터 공략하기 시작했어요. 결국 요동성을 비롯한 여러 성이 당나라군에 줄줄이 함락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당나라 대군의 발목을 잡은 성이 있었으니, 바로 안시성이었습니다. 안시성의 성주와 관민은 온 힘을 다해 당나라의 군대를 막아냈어요. 9월이 되자 더 이상 전쟁을 지속할 수 없었던 당태종이 결국 후퇴합니다. 중원 대륙의 통일 제국인 수, 당의 대군과 맞서 고구려가 승리를 거둔 것입니다. 당태종은 안시성 전투에서 패배한 뒤 얼마 못 가 생을 마감했습니다. 이제 고구려 정벌을 그만두라는 유언을 남긴 채 말이지요.

 승리의 기쁨도 잠시, 한반도의 삼국시대도 저물고 있었습니다. 위기에 빠진 신라가 당나라와 동맹을 맺고 서서히 삼국 통일의 문을 열고 있었어요. 660년에는 백제가 멸망합니다.

 연개소문이 사망하자 고구려의 지배층은 권력 다툼으로 분열됐어요. 최고 집권자의 공백 아래, 고구려는 이미 내부로부터 무너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668년, 나당 연합군에 의해 고구려의 평양성이 함락됩니다. 남아 있던 저항 세력이 부흥 운동을 이어갔으나 국운은 이미 쇠하고 말았습니다. 700년간 이어진 고구려의 마지막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