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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의 중세를 연 고려, 후삼국시대로 다시 분열되다(2)

by 열매와 꿈나무 2025. 8. 6.

 3. 포용의 아이콘 왕건, 마침내 통일을 이룩하다

 후백제에 밀리던 왕건은 마침내 930년, 고창 전투에서 대승을 거둬 전세를 뒤집었습니다. 이때부터 계속 타격을 입던 견훤은 935년에 충격적인 사건까지 겪어요. 견훤은 원래 넷째 아들 금강에게 왕위를 물려줄 계획이었습니다. 이에 반발한 장남 신검이 결국 나라를 빼앗고 연훤을 쫓아낸 거예요. 견훤은 3달 동안 금산사라는 절에 갇혀 있다가 간신히 빠져나와 왕건에게 달려갑니다. 전투에서 맹렬히 싸운 원수마저 받아준 진정한 포용의 아이콘 왕건은 견훤을 극진히 대우해주었습니다.

 이 소식에 신라 경순왕도 고려에 자진 항복합니다. 애초에 경순왕과 신라인의 마음은 이미 고려를 향하고 있었어요. 견훤의 꼭두각시로 전락한 경순왕과 신라인들은 통곡하며 욕되게 죽은 경애왕의 장례를 치렀어요. 신라인에게 견훤은 치가 떨리는 철천지원수였습니다. 마지막 결정의 순간까지 태자가 눈물로 반대했지만, 경순왕은 이미 천하의 대세가 고려에 있음을 알았어요. 더 이상 가여운 신라 백성들을 고생시킬 수 없었던 경순왕이 고려에 스스로 와서 복종하며 935년, 신라 1,000년의 역사가 막을 내립니다. 왕건은 직접 경순왕을 맞이하며 극진히 대우해주고 장녀 낙랑공주와 혼인시켰어요.

 이제 후삼국 통일을 위한 왕건의 여정에 남은 것은 후백제뿐이었습니다. 견훤은 왕건에게 자신의 나라를 빼앗은 아들의 목을 베어달라고 부탁했어요. 권력은 아버지와 아들의 사이도 죽음으로 갈라놓을 만큼 무섭고 냉혹했습니다. <삼국사기>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어요.

 

   "늙은 제가 전하에게 몸을 의탁한 것은 반역한 자식의 목을 베기 위한 것입니다. 나라를 어지럽히는 난신적자를 없애주신다면 저는 죽어도 유감이 없을 것입니다."

 

 이에 왕건이 견훤과 함께 대군을 거느리고 후백제로 진격합니다. 936년, 후백제와 고려의 운명을 건 마지막 결전이 바로 '일리천 전투'였어요. 이때 후백제인들은 견훤을 내쫓고 정권을 장악한 신검에게 이미 등을 돌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견훤이 고려의 대군과 함께 눈앞에 나타나자, 전의를 상실한 후백제 장군들은 스스로 갑옷을 벗고 견훤 앞에 항복하기 시작했어요. 후백제는 이렇게 일리천 전투에서 대패합니다.

 이어진 황산 전투에서 신검을 어떻게든 맞서보려 했지만 이미 가망이 없었습니다. 끝내 신검이 항복하면서 후백제가 멸망합니다. 신검이 신하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견훤의 왕위를 빼앗았다고 변명하자 대인배 왕건은 신검을 용서해주었어요. 이 모든 광경을 바라보던 견훤은 속이 터질 노릇이었습니다. 큰 뜻을 품고 건국한 나라를 자기 손으로 멸망시킨 견훤은 깊은 우울감에 빠져 있다가 얼마 후 인근 절에서 쓸쓸히 죽을 맞았습니다.

 이렇게 신라와 후백제는 영영 사라졌으마, 이는 곧 500년 고려 역사의 새출발을 알리는 순간이었습니다.